황희정승의 유종의 미
황희 정승과 유종의 미
어쨌거나 노랫말처럼 무정한 세월은 갖가지 사연을 뒤로한 채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덧 연말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이 때쯤이면 생각나는 말이 ‘유종(有終)의 미’다. 그리고 황희 정승에 얽힌 일화가 함께 묻어나온다.
황 정승 집에 하인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충직하고 근면한 두 사람이 있었다. 정승은 이들의 그런 점을 고맙게 생각하고 종의 신분을 면하게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두 하인을 불러 말했다.
“너희들이 그간 보여준 근면함을 가상히 생각한다. 해서 종의 신분으로부터 방면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느니라.”
두 하인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얼떨떨해 하는 그들에게 정승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너희가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다소간의 재물을 주려하니 그리 알아라. 그런데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 줄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새끼줄을 좀 꼬아줘야겠다. 양(量)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자! 그러면 내일 새벽에 보자꾸나.”
정말 도깨비에게 홀려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종의 신분을 면하게 해주는 것만도 황송한 일인데 재물까지 준다니 두 사람은 형용하기 어려운 흥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 흥분이 가라앉자 방금 전 황 정승의 말씀이 생각났다.
한 사람은 ‘얼마나 고마우신 어른이신가. 하해 같은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꼬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밤이 이슥하도록 정성을 다해 새끼줄을 꼬았다.
한편, 다른 사람은 ‘고맙기는 고마운데, 따지고 보면 그간 내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 때문이 아닌가?! 그건 그렇고 방면해주는 마당에 끝까지 부려먹을 건 또 뭐람.’하고 새끼줄을 꼬는 둥 마는 둥 잠이 들었다.
한 생각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
새벽이 되자 두 사람은 간밤에 꼬아놓은 새끼타래를 들고 설레는 가슴을 억누르며 정승의 처소로 갔다. 황정승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두 사람의 인사를 받고 그간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치하한 후 한 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엽전이 든 궤짝이 놓여 있었다. “너희들이 꼬아 온 새끼줄에 저기 궤짝에 있는 엽전을 꼽을 수 있을 만큼 꼽아 가도록 해라.”
순간 두 사람의 희비는 엇갈렸다. 유종의 미가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보여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