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망적
옛날 한 바라문이 큰 잔치를 베풀려고 했다. 그는 제자에게 잔치에 쓸 질그릇을 마련해야겠으니 옹기장이를 한 사람 데려 오라고 했다. 제자는 옹기장이 집을 찾아 나섰다. 두중에 그는 질그릇을 나귀 등에 싣고 팔러 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잘못하여 나귀가 질그릇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릇이 모두 깨어지고 말었다. 그 사람은 울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바라문의 제자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오랜 고생 끝에 그릇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려고 가는 길인데 이 못된 나귀 때문에 모두 깨어 졌으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귀야 말로 참으로 훌륭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그릇을 잠깐 사이에 모두 깨뜨려 버리니 그 솜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나귀를 사겠습니다.’
옹기장이는 기뻐하며 그 나귀를 팔았다. 제자가 그 나귀를 타고 돌아왔다. 그를 본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다.
‘옹기장이는 데려오지 않고 웬 나귀를 끌고 오느냐?’
‘옹기장이보다 나귀가 더 필요합니다. 옹기장이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질그릇을 나귀는 잠깐 동안에 모두 깨뜨려 버립니다.’
그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미련하고 지혜란 조금도 없구나. 이 나귀는 깨뜨리는 일은 잘 할지 모르나 백년을 걸려도 그릇 하나 만들지는 못한다.’
오랫동안 남의 은혜를 입고도 그것을 갚을 줄 모르고 오히려 손해만 끼치고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많다. 여기에서 나귀에게 옹기를 깨트린 벌을 주었어야 하는데 깨트리는 것으로 못된 나귀로만 표현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 나귀는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준 주인의 은혜를 모르고 주인이 정성스럽게 오랫동안 만든 그릇을 무겁다는 핑계로 모두 깨트려버린 것이며 또 이를 장하다고 사온 사람의 자식인 재자나 동물인 나귀나 무엇이 다름이 있겠는가 재자는 스승이 시킨 일을 했어야 하는데 역한한 일 등은 모두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은혜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도 그와 같다. 오랫동안 남의 은혜를 입고서도 그것을 갚을 줄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손해만 끼치고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이 이 비유와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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